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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천명 도전기_정명희 나의 태권도, 너의 기타, 우리들의 디봉 중 [나의 태권도]
어려서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피터 팬처럼 . 나이 앓이가 무뎌졌나 싶었더니 코로나와 함께 50이 되었다.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알 나이라는데 아직 갖춤이 부족하다. 피해 다니던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비로소 해방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걸릴걸.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선택한 세 가지 도전, 그 이야기를 이제 시작한다.
첫 번째 도전 : 나의 태권도 기억 #1 운동 못 해 죽은 귀신 늘 밖에서 놀다 하루를 마감하던 난 열 살까지는 통통한 편이었다. 운동장 원형 트랙 부분에서 넘어질까 두려운, 학교 운동장 반 바퀴를 간신히 뛰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병치레를 유난히 많이 한 국민학교 3학년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100m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오래 매달리기 같은 체력장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운동을 제법 잘하고 있었다. 창의적인 춤이나 댄스는 어려웠지만(지금도 못한다. ㅠㅠ 다음번 내 도전 항목에 List up!), 동작이 단순하고 끈기가 필요한 체력장 종목에는 소질이 있었나 보다. 초4부터 고3까지 매일 쉬지 않고 했던 윗몸 일으키기, 동네 아저씨들과 쳤던 배드민턴, 고등학교 1, 3학년에도 쳤던 테니스로 체력을 키웠다.
하지만 여중, 여고에서 나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92년, 남녀공학에 진학했다. 몰랐는데, 대학교가 물이라면 나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앞으로는 컴퓨터가 필수라며 친구들이 들어간 컴퓨터 동아리에 아무 생각 없이 덩달아 따라갔던 난, 컴퓨터 대신 함께 운동할 남자 사람이 많아서 너무너무 좋았다.
“흑갈적등노녹청자회백”을 외우며 납땜질을 해보기도 하고, Basic이니 C언어니, C++이니 하는 프로그램언어들도 배워는 봤지만 도통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는 미뤄두고 자전거 타고, 테니스 치고, 농구하고, 족구하고, 축구하고, 볼링을 치며 스포츠맨으로 살았다. 운동 못해 죽은 귀신처럼.^^ 기억 #2 삼 남매 엄마의 사회 활동 준비
그렇게 운동으로 생활의 활력을 찾던 내가 서른, 결혼과 함께 곧바로 얻은 첫아이, 연이은 둘째, 그리고 띄엄띄엄 늦둥이를 갖게 되면서 좋아하던 운동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운동보다는 아이에 맞추는 시간이었다. 그래야 했지만 엄마 정명희만큼 나, 정명희도 소중했는데 세 남매의 엄마라는 위치는 그리 잘 해내지 못해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도 많지만^^ 아이들이 크는 사이에 내 나이는 어느덧 50을 바라보고 있었다.
40대 초반, 인간관계에서 인생의 쓴맛을 본 나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부분을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 인터넷 강의, 정법 강의였다. 천공 스승님은 자고로 홍익인간은 인성도 갖추어야 하지만 몸수련도 반드시 해야함을 강조하셨기에 유튜브로 홍익인간 인성 공부를 하며 태권도 수련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20년, 코로나가 이리 길어질 줄 모르고 인생 2막을 위한 사회 부모 공부 과정을 큰맘 먹고 시작했다. 엄마가 된 지 18년 차였다.
그러나 코로나 첫해엔 대면 활동이 죄악시되던 때라 오프라인 수업 과정을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등교중지와 비대면 수업 환경 덕에 나도 “줌”이라는 걸 알긴 했지만 내가 선택한 교육과정에서는 아직 적용이 안 된 상황이라 눈물을 머금고 중도 포기를 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하기로 남편과 약속했다.
사회 부모의 갖춤을 위한 인성교육 과정은 비록 중도 탈락했지만, 체력 단련을 위한 태권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몸치인 내가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품새를 익히고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큰아이의 도움을 받으려 해도 마찬가지.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처음 테니스 배울 때 마냥 한 동작 한 동작 끊어 익히기를 시도했다. 동작마다 이름을 붙이고, 좌우 앞뒤 방향을 적고, 좌회전 90도, 우회전 180도, 좌회전 270도를 적고 그려 벽에다 두루마리 그림을 붙여놓았다.
그 후 2년간 혼자 거실이며 방이며 놀이터에 나가 태극 1~3장만 했다. 그럼에도 종종 까먹고 얼음이 되어 서 있는 날 본 딸의 두 마디는 팩트폭격이었다. “엄마는 무슨 태권도를 수학 공식 외우듯 해? 어떻게 몸으로 하는 걸 몇 년을 하고도 까먹을 수가 있어?”
나도 그렇게 까먹는 내가 참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 나 못한다, 그래도 할 거다, 연습에 장사 없다, 그러는 넌 태극 1장 할 줄 아냐?’ 하며 신나게 반복했다. 코로나로 고립무원의 삶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며 나를 지탱해 준 시간이었다. (그랬던 딸, 올해 재수를 마치면 자기도 내년엔 태권도장에 갈 거란다.) 기억 #3 코로나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코로나 와중에 대학에 진학한 큰아이의 첫 M.T는 무사히 지나갔다. 극강의 수준으로 조심하던 고1 딸아이만 혼자 앓고 끝난 봄의 코로나 이후 우리 가족은 여전히 조심하며 꼭 필요한 바깥 활동 외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가족 간 왕래도 삼가며 지냈다. 큰아이의 여름 M.T는 오미크론 코로나가 창궐하던 여름방학 끝에 잡혀 있었다. M.T에 대해 조심스러운 아빠와 내 의견은 달랐다.
방학 내내 조심하다 2학기 개학하고 코로나 걸리면 억울할 것이다, 중간고사에도 영향이 있을 테니 걸리더라도 학기 초가 차라리 낫지 않겠나? 2년 반의 시간 동안 방역 수칙에 철저했던 남편도 이제 지친 나머지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허락을 했다. 그리고는, 진짜 올 것이 왔다. 아들, “엄마, 목이 이상해요, 엄마, 죄송해요. ㅠㅠ”
그다음 날 저녁엔 내 목이 이상했다. 드디어 왔구나! 하룻밤 열과 몸살로 고생했다. 그다음 날은 남편이 목이 이상하단다. 또 왔다. 또 하룻밤 열과 몸살로 고생했다. 가족들의 코로나에 비상이 걸렸다.
봄에 심하게 앓고 후유증이 남아있던 딸내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배달 음식으로 혼밥을 먹었다. 등교를 안 시키고 격리하고 있다가 맨 마지막에 걸린 초등학생 막내는 추석 연휴를 이어 한 주를 더 쉬었다. 이 녀석도 하룻밤 열나고 나더니 말짱해졌다. 자기는 학교 안 가서 너무 좋았단다. 이후로도 학교 가기 싫으면 내심 코로나 걸려 오래 쉬기를 바라는 철부지 막내다.
참고로 코로나 예방 백신을 4번 맞은 아빠도, 3번 맞은 큰아들도, 두 번 맞은 엄마와 딸도, 한 번도 안 맞은 막내도 모두 걸렸다는 사실. 봄 오미크론을 앓은 딸과 달리 가을 오미크론에 걸린 우리 넷은 하룻밤 정도 아프고 끝났다. 그러고 나서 추가로 1주 더 조신하게 집에 있었던 내가 첫 외출에 달려간 곳은 바로바로 태!권!도!장!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걸릴걸~ 기억 #4 30분 만의 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래도 태극 1~3장은 익혔다는 부심을 하고 있었다. 혼자 놀이터에서 찍은 영상을 지인들에게도 보낼 정도였다.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흉내 내기였건만, 그땐 그랬다) 관장님과 사범님께 지도를 받아보니 이렇게 맹탕일 수가. 간신히 임금 왕(왕) 자 품새선 정도를 익히고 간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태극 3장의 손날 목 치기를 몸통막기로 하고 있었다. 막내 등교 배웅 후 아이들이 없는 텅 빈 놀이터에서 제대로 연습을 시작했다.
너무 재밌고 좋아서 ‘30분만 해야지’ 하고 시작한 연습이 한 시간, 두 시간이 되도록 이어졌다. 추워도 추운 줄을 몰랐다. 이렇게만 하면 여섯 달 만에도 1단이 충분히 될 것만 같았다.
기억 #5 격파! 12월의 마지막 겨울 저녁, 첫 승급 심사가 있었다. 기본 동작들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송판 격파. 실은 코로나로 집에만 있는 2여 년간 원래 좀 부실했던 발목과 무릎이 약해져서 잘 걷지도 못하다가 태권도를 시작한 터였다.
신체 기능이 40대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갱년기인지라 고민도 되었는데 태권도 수련을 하면서 다행히도 잘 걷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발등으로 돌려차기 격파를 하고 나서 발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아, 나 빨리 국기원 가야 하는데…’ 하며 한 시도 놓치고 싶지 않아 곧바로 발 전문 정형외과로 달려가 치료를 받았다.
2주 조심하고 나니 다시 수련할 수 있어 참말 다행이었다. 그 2주도 아까워 눈으로라도 수련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는 20대 여수련생이 발을 다치는 일이 또 있었다. 젊으니까 나보다 회복이 빠를 거로 생각했는데 제대로 수련하기까지 서너 달이 걸린 걸 보면서 나이는 큰 장애가 아님을 새삼 느꼈다.
시니어 태권도 찐 Tip 30분 전 스트레칭, 충분히 해주세요. 수련 전, 중, 후, 소금물을 충분히 보충해 주세요.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으세요. 다리 힘을 키워줍니다. 굽은 오다리도 펴진답니다. 품새선 까먹는 것은 슬퍼하지 마세요. 백번 하다 보면 돼요^^
발차기는 디딤발의 ⅓ 앞축으로 디디며, 뒤꿈치 살짝 든 채로 해야 허리나 고관절, 무릎 부상을 피할 수 있습니다. 돌려차기, 옆차기 등 회전하는 발차기는 뒤꿈치 들고 앞발 축으로 회전하세요. 부상 방지! 제일 중요! 시선은 정면, 단전에는 힘! 당당해집니다. 기합은 단전에 힘 빵빵하게 주고 힘차게! 자신 있게! 얍!
기억 #6 오지랖? 욕심! 주 2일 가는 태권도를 열심히 거의 매일 갔다. 조수석에 앉아서까지 새로 배운 손날막기를 하는 걸 본 남편은 그렇게 좋으냐 묻는다. 내가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공부를 우선은 접고 집에만 있었다는 걸 아는 남편은 너무 좋아하는 수련을 잘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다.
말 없는 묵묵한 지지여서 잘 못 알아차렸는데 이번 e-book을 만들며 돌아보니 진짜 큰 응원을 해줬던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여기에 다시금 남긴다.
암튼, 그렇게 밤낮으로 품새를 익혀나갔다. 나와 함께하는 수련생들까지 열심이니 선배님까지도 우리를 도우려 애 많이 쓰셨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오고 말았다. 시원하게 뻥뻥 찰 수 있던 다리는 어디로 가고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몸이 말을 잘 안 들었다.
쉬어야 함에도 내가 세운 기준으로 성실함의 상식에 갇혀 그만 선을 넘어 버렸다. 거기다가 남 걱정하는 오지랖을 부린 것이 쌓여 컨디션이 회복되질 않는 기간이 길어졌다.
정형외과에선 한 시간 정도의 태권도는 괜찮다 하고, 한의원은 가는 곳마다 태권도는 쉬고 약을 먹으라는데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여기서 쉬면 영영 못 할 것만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나고 보니, 살 뺀다고 밥 안 먹고 생채소는 아주 많이 먹던 식습관, 내 몸의 아우성을 못 알아차린 둔함, 나도 못 챙기면서 남을 챙기려 들었던 오지랖과 욕심이 어우러져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태권도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기억 #7 드디어 국기원
스트레칭도 안 되는 다리가 품새 할 때가 되면 할 수 있는 다리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국기원 가기 전날, 나와 함께 갈 15살 연상의 베이비부머 어르신과 마지막 연습을 하며 몸을 살짝만 풀었다.
너무 무리하면 국기원 가서 도리어 기량을 못 꺼낸다고 주의를 주신 관장님. 솔직히 몇 달 먼저 가고 싶을 정도로 노력했지만, 시니어 태권도 수련자가 많지 않은 터에 함께 땀 흘린 우리 수련생과 같이 가는 것이 그리 큰 의지가 될지도 몰랐다.
아줌마와 할머니의 태권도복 차림에 어린아이들은 우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시선을 즐기며 소풍 나온 것처럼 들떠서 마지막 연습을 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 해냈다. 나도 그랬겠지만^^ 어르신도 날짜가 임박해질수록 점점 더 품새가 멋이 들고 있었다. 까먹지도 않고 아주 잘해 냈다.
복도에서 마주친 심사위원, 국기원 밖에서 마주친 학부모들까지 칭찬해 주어 어린아이처럼 뿌듯했다.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관장님이 소회를 물으셨다. 조금의 후회 없이 시원하고 개운하다고 말씀드리니 그거면 됐단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것을 자신이 아는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래, 그거! 최선을 다했다는 말, 코로나에 스스로를 가뒀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다.
기억 #8 그 후로도 오랫동안 흰 때부터 시작한 수련이 검은 띠로 한번 매듭을 묶고 나서도 나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내가 공부 중인 아카데미 과정에서도 태권도 수련을 하다 보니 우리 도장 수련과 수련이 겹치게 되었다. 나는 2단 승단을 위한 특별 수련이라 생각하고 낮에는 광교에서, 저녁에는 남산 청도관에서 몇 달간 수련했다.
각지에서 모인 수련생들과 만나보니 나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어 좋았고, 남산 도장은 나의 친정 같은, 늘 나를 품어주는 둥지와 같아 좋았다.
그 사이 세계 태권도 청도관 연맹 선수권 대회에서 1단 품새 종목 2위에 입상하는 경험도 했다. 1단으로 승단하던 날, 나는 무결점의 품새를 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었는데, 2단을 준비하는 동안 여러 나라 수련생과 여러 지역의 수련생을 만나며 나의 부족한 점을 찾으며 저절로 겸손해졌다.
동영상을 찍으며 내 품새의 부족한 점을 찾으려 했지만 스스로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를 지도해주신 사범님들과 처음 본 사범님들의 조언들이 한 땀 한 땀 바느질되어 나를 이끌어주셨다.
7월 큰 대회를 앞두고 국기원 승단을 한 달 뒤 8월로 미룬 덕분에 2단 승단을 찾아가는 도장 심사로 치른 것이 못내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라도 빨리 승단하고 싶었지만, 여건상 미룬 것이 지금도 아쉽다. 나와 같은 후배 수련생을 만난다면, 난 망설임 없이 바로바로 가라고 조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해서 2024년 8월 4일 자로 공인 태권도 2단이 당당히 되었다는 것이다. 완벽해질 때까지는 밖에 나서지 않게 단도리해 준 신병현 관장님,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수련하느라 지각을 해도 열심히 하는 자세를 격려해 주던 유문기 사범님, 외국 출장 가면서도 응원을 잊지 않던 정백섭 사범님, 오랜 습관으로 굳어버린 잘못된 자세를 수정해 주던 유광렬 사범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범님이 감사하다.
부상으로 여러 치료를 전전하던 내게 식습관과 잘못된 발차기 포인트를 짚어주신 광교 아카데미의 정 관장님도 큰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꿈쩍하지 않는 나를 제 발로 태권도장에 가게 만드신 우리 천공 스승님께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을 전한다.
나의 인생 2막은 태권도 수련과 함께 이 사회를 어루만지는 사회 부모로 시작해 보려 한다. 2년 뒤 8월, 나의 태권도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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