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사범 기네스기록 의족장애 세계 최고(7단) 등재

태권도로 ‘인생 역전’ … 다리 절단 운명 딛고 새 삶 개척

우용희 | 입력 : 2020/12/15 [19:48]

 

▲ 늦둥이 막내딸 김세은(명호중2학년,태권도2품)양과 수련 중인 김형배사범.

 

 

 

 


[무도매거진-우용희기자] '한때는 실의에 빠졌다. 좌절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아니 빠져나올 마음은 애당초 없었는지 모른다. 사회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신이 찾아왔다. 신은 치유의 손길을 내밀었다. 신의 손엔, ‘태권도가 들려 있었다. 마음의 눈이 번쩍 뜨였다. 태권도 수련에 매달렸다.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던 의족은 더는 걸림돌이 아니었다. 시나브로 마음의 상처는 아물어져 갔다. 새로운 인생이 열리기 시작됐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다.

▲ 김형배 사범이 새 삶을 개척하는 데 용기를 불어넣어 준 이상정 동부 태권도장 관장과 함께 기네스 세계기록 인증서를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의족 장애인 최초로 태권도 7단에 올랐다. 202041일엔, 한국기네스위원회(KRI 한국기록원)에 등재돼 눈길을 모았다. 김형배 사범(62)이다.

부산광역시에서 활발하게 삶을 살아가는 그를 만났다.

 

태권도가 불어넣은 새 삶의 의욕 군 복무 중 지뢰 밟아 다리 절단

19836, 김형배 사범은 전방 모 사단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제대를 1개월 남겨 놓고 그는

비무장지대(DMZ)에 투입됐다. 국가로부터 명받은 전역 대기병은 작전 지역인 비무장지대(DMZ)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남다른 군인 정신과 후임을 아끼는 그(당시 병장)는 담당 소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들어갔다가 발목 지뢰 폭발로 말미암아 왼쪽 다리가 절단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전역 후 상실감으로 실의와 좌절 속에 스스로를 학대하고 사회를 원망하며 폐인에 가까운 나날을 보냈다.

사회생활이 극히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체력이 극도로 떨어지며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한 세월이었다.

 

마흔 살이 되던 어느 날, 문뜩 마음의 문이 열렸다. 어릴 적 수련하던 태권도를 다시 배우고자 결심했다. 부산에 위치한 동부 태권도장(관장 이상정)을 찾아갔다.

 

태권도를 수련하며 날이 갈수록 건강을 회복한 그는 이제 완전히 다른 양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자신감에 가득 찬 활발한 성격으로 바뀐 데 힘입어,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한다.

 

2003 세계 태권도 한마당 대회에 출전해 정상인과 대결했는데도 발 격파 3위의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2008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42.195) 완주에 도전해 한 신문이 선정한 의족 영웅의 영광을 안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부산교통공사 역장 퇴임 이후에도 부산시민교육연구소 스포츠위원장부산지체장애인협회 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태권도계에서도 바쁘게 움직인다현재 부산장애인태권도협회 부회장으로, 장애인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 태권도를 수련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 치르는 체력장을 잘하기 위해서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태권도를 배웠다. 태권도를 하면서 체력이 좋아지고 불량배를 만나도 두렵지 않게 됐다.

태권도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 태권도가 군 복무에 도움이 됐을 듯싶다.

그렇다. 군에 가서는 전방 수색 소대에 배치되었는데, 훈련이 다소 힘들었다.

그렇지만 태권도를 잘한 덕분에 부대 태권도 조교를 하며 선배들에게서 사랑받으며 군 생활을 보람차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병장 말년에 지뢰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 태권도를 수련하지 못하면서 태권도 사범의 꿈을 접었다.”

 

-. 어떻게 태권도를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었는지 궁금하다.

의족을 하고 태권도를 하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당연히 태권도를 하지 못할 줄 알았다.

삶의 의욕을 잃었던 터라, 별달리 움직이지 않자 체력이 약해지며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 마흔 줄에 접어들며 인간으로 태어나 이대로 생을 마쳐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소비했다고 깨달으며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체력을 키워 주고 자신감을 주었던 태권도를 다시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 그런 몸으로 태권도를 배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의족을 한 다리로 태권도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발차기를 하려면 중심을 잡기가 매우 힘들었다. 자주 넘어졌다.

의족과 살갗이 맞닿는 부분에 상처가 자주 나서 고통스러웠다. ‘이 다리로 과연 태권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실망도 했다. 그래도 그럼 그렇지.’ 하는 비아냥거림을 들을까 봐 포기하기는 싫었다.

이를 악물고 꾸준히 수련했다. 발차기 하나를 수없이 되풀이하며 훈련했다.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이상정 관장님이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 김형배사범 비장애인과 겨루기 장면

 

-. 현재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처음엔, 겨루기를 할 때 상대를 한 번도 타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꾸준히 수련하니, 상처 부위가 단련되며 실력이 향상됐다.

지금은 비장애인 수련생들과 겨루어도 손색없을 정도의 실력이 됐다.”

 

-. 태권도를 계속 수련하고 있다. 그만큼 태권도의 매력은 상당한가 보다.

태권도를 계속 연마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둘째는 불의의 공격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건강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얻어 활기찬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다. 태권도는 발차기, 주먹지르기, 막기 등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신체를 단련하는 운동이다.”

 

-. 충만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의족 장애인 태권도 7단이라고 하면 겨루기를 하자며 도발하는 분도 있다.

두렵지 않다. 수많은 시간 고통을 이기고 신체를 단련하여 실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 앞으로 계획을 밝혀 달라.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목표가 생겼다. 첫째, 좌절하고 절망하는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기고 싶다. 둘째, 태권도를 계속 수련하여 건강을 지키고 의족 장애인으로서 태권도 9단에 오르는 것이다.”

 

그는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 수련하다 보면 때로는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그런 나태함을 극복하고 인내심을 기르며 나 자신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했다. 자신감이 쌓이면서 삶이 만족스러워졌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겠다.”라고 다짐했다.

 

김형배 사범 프로필

군 복무 중 DMZ 지뢰 사고로 왼쪽 다리 절단

학력: 동아대학교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자격증 : 태권도 3급 사범, 생활체육 3급 지도자. 재활 스포츠 2급 지도자

경력·수상

태권도 7단 승단 의족 장애인 최고 유단자 인증(2020. KR I한국기록원)

SBS ‘세상에 이런 일이출연(2020. 의족 태권도 7단 고수)

KBS ‘아침 마당출연(2014)

2008 베를린 마라톤 대회 풀코스 완주

2010 전국 장애인 태권도 대회 1

2003 전국 태권도 한마당 대회 격파 부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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